『시련』 줄거리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의 인련의 비극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희곡이다.
16살 애비게일을 비롯한 마을 소녀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금기된 의식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로 인한 벌을 피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을 악마와 마녀라고 고발한다. 법관들은 아이들의 말을 맹신하며 자백 또는 참수형이라는 옵션을 내밀며 고발된 시민들을 재판한다. 먼저 고발하는 사람이 무고해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공포로 인해, 누군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먼저 이웃을 고발한다. 고발 당한 이들은 자신과 다른 고발당한 사람들이 악마와 내통했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목숨을 구하거나,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다 참수를 당한다. 애비게일과 한때 불륜 관계였던 프록터는 고발 당한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탄원을 하다가 스스로도 고발당해 갇히게 된다. 거짓 자백을 하려던 그는 결국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일말의 선을 찾으며 목숨을 잃고 명예를 지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아서 밀러의 『시련』을 읽고 느낀 점
초반 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마녀나 저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들이 바로 마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인물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집중도가 높아졌다. 거짓이 거짓을 낳으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거짓 자백을 해야 허는 상황이 많아지면서는 현실의 부조리한 일들도 떠올랐다.
인상 깊은 장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가까운 클라이맥스 부분이었다. 을 연극이나 영화로 본 적이 없는데, 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애비게일과 소녀들이 집단으로 악마를 보는 연기를 하면서 진실을 말하려고 법정에 선 메리 워렌을 악마로 몰아가는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장관이었다. 다음 주 국립극장에서 NT Live로 연극을 상연하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지 굉장히 기대가 된다.
연민이 가는 인물
대부분의 인물이 치명적인 약점들을 가지고 있기에 – 그래서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K-드라마의 아름답고 멋지고 착한데 능력까지 출중한 판타지적 인물들을 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 연민도 쉽게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중 그나마 조금이라도 연민이 갔던 인물들은 메리 워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준이 없고 우유부단한 성향이라 답답했지만, 나중에라도 거짓을 바로잡고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점 – 물론 이도 이타적인 이유보다는 본인이 하늘에 진심으로 구원받기 위함이 더 크지만 – 을 다른 인물보다는 높게 사고 싶었다. 마지막에 결국 공포에 굴복해서 프록터를 악마의 시종이라고 고발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애비게일과 다른 소녀들, 법관이 목숨을 담보로 몰아가는데 그 상황에서 영웅처럼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용기를 냈지만 더한 과오를 저지른 메리는 애초에 흔들리지 않는 애비게일이나 댄포스 목사들보다 가책과 죄책감에 괴로워할 확률이 높고,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연민이 들었던 것 같다.
가장 호감이 안 가는 인물
정말 발암을 유발하는 것 같은 인물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호감이 안 가는 인물 한 명만 뽑기가 쉽진 않았다. 그래도 한 명 뽑자면, 그 영광스러운 자리는 댄포스에게 줄 수 있겠다. 자신 때문에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장으로 사라져도 오직 자신이 옳아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라진 목숨과 지난 과오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미래의 추가 희생을 막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증명하는 것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편파적이고 목숨 귀한 줄 모르면, 세상이 얼마나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메리 워렌과 프록터를 궁지로 몰며 결국 죽음 아니면 거짓 자백이라는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부분에서는 너무도 답답하고 화가 났다. 어쩌면 이런 부조리한 사람과 이런 부조리함이 심심치 않게 자행되는 현실이 맞닿아 보여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 볼 점
작가는 『시련』을 통해 마녀사냥과 같은 집단광기와 미국의 매카시즘의 비슷한 점을 통해 내재한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룬다. 이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것도 충격적이었는데, 극 중 16살로 나오는 애비게일의 나이는 실제로 더 어렸고, 소녀들과 법관들의 숫자가 더 많았던 것은 더 충격적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강요됐던 고발과 강제 자백이 떠오르기도 하고, 2024년 현재 무리 지어서 누군가를 왕 시키고 집단 폭력을 휘두르는 학교폭력과 못 본 척하는 어른들도 떠오른다. 끊이지 않는 전쟁도 결국에는 이해관계나 복수심으로 발화된 집단광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는 유명인들의 학교폭력과 성추행 등의 고발. 한 명의 셀럽의 과오가 부풀려지고 언론과 전 국민이 비난과 표적화하며 대상이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리는 상황. 이 외에도 집단광기와 마녀사냥을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또 조금 씁쓸했던 것 같다. 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1692년, 작가는 1915년생인데, 2024년인 지금이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것은 아닌 것도 같아서 더 그랬다.
한편으로는 내가 『시련』 속 세일럼 주민이면 과연 정의를 지키기 위해 선뜻 내 목숨을 내놓기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미친 세상 속에서 가치 미치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보다 더 미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존을 위해 거짓을 고하고, 그로 인해 남들이 피해를 당하여도 묵인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존이 위협받는 혼돈 속에서 인간성, 나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면 그런 카오스의 세계까지 가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소하지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친절하게 살아가는 것.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어도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환경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는 것, 맹목을 지양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 조금 더 나서서 나누는 것.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하루하루 더 살아가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좋은 세상과 그를 위한 노력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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