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기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원치 않는 전공을 하며 버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인턴십 기회가 있어 뉴욕으로 무작정 넘어갔다. 뉴욕에서 가족도 친한 친구도 없이 온전히 혼자가 되어 1년을 지내고 보니, 문득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원래 하고 싶었던 영화를 전공하기 위해 급히 시험을 준비하고 뉴욕의 한 시립대 영화과에 입학했다. 언어 장벽도 있었고, 공부하면서 일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즐겁게 공부했다. 영화연출 공부와 더불어 연기까지 공부를 시작해 연극을 부전공하고 연기 활동도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고 많이 울기도 했지만, 매우 행복했다. 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사실에도 많이 감사했다.
하지만 다른 예술 전공자들이 그렇듯 예술이라는 분야가 생계유지하기에 취약한 경우들이 많았다. 나도 졸업 후에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좋은 성과를 냈지만, 갈수록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미국에서 그 받기 힘들다는 O-1 비자까지 받아냈는데, 집에 사정이 생겨 결국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8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학교에 다니고 일을 했던 미국에서 떠나서 온 한국은 오히려 외국 같았고 다시 인생이 리셋되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인 프리랜서 생활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서울에 자리를 잡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당장 월세를 내고 고정지출을 감당할 수 있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무래도 영어라는 무기가 생겼으니 번역 아르바이트를 간헐적으로 했고, 오전, 오후에는 영어 가르치는 일을, 밤에는 연기 가르치는 일을 했다. 영화랑 연극을 놓을 수는 없어서 단편 영화 작업을 하고 각종 예술 지원사업에 지원하면서 공연도 제작했다.
그때는 무작정 열심히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남들 2배로 일을 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사는 것은 미국에서 5년, 한국에서 4년 총 9년이 지나자 크게 번아웃이 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극이나 영화가 아닌 일을 할 때는 더더욱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많이 해도 벌 수 있는 금액에 한계가 명확했다. 시간당 얼마로 계산하는 산정되는 강사료는 잘 오르지 않았고, 내가 일 하는 시간을 늘려야지만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그렇게 일하는 시간이 늘어가는 만큼, 점점 주객이 전도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 진심으로 시간을 쏟고 싶은 일에는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갔다.
회사 생활
게다가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몸이 아프거나, 어떤 일이 생겨 일을 못 하게 되는 순간에는 정확히 그만큼 아무런 돈도 벌 수 없는 구조였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IT 스타트업 연출팀 팀장직 제안이 들어왔고,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했던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회사 생활에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완성할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율성이 제한되는 회사 생활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짙아졌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는 지금껏 유례없던 액수의 돈을 벌었지만 – 그래 봤자 내 나이 또래들이 받는 돈보다는 적은 액수였다 – 유례없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
급기야 2023년 하반기부터 제2의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봐도 직전 회사에 문제가 많았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 30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10대, 20대 때 했던 고민과 비슷하지만 당장의 생존까지 걸려 있는 어쩌면 더 치열한 고민이 덮쳤다.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나를 갈아 넣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어떤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빠질수록 순간의 틈에서 느끼는 공허함이 커졌고, 몸과 마음의 건강도 점점 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2023년 하반기 퇴사를 결심하고, 좋은 기회로 공연에 설 기회가 생겼다. 퇴사 후 두 달은 공연과 준비에 온전히 몰입했다. 그 후 여행도 다니고 약 5달 정도 쉬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완전히 게으르게도 살아보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고 하니까 어느덧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차오르고 다음을 생각하고 싶어졌다.
먼저 낸 결론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연기를 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극과 연극을 만들고 싶다. 이제부터 이 목표만 생각하고 달려가려고 하지만, 생존은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 동안에 깨달은 점이, 나는 쪼들리지 않을 정도의 재화를 확보하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회사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아무리 연봉상승률이 높아도 그 천장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자율성이 존중되고 업무시간의 자유도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데 회사는 이 두 가지 속성을 존중해 주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소거법으로 인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남은 옵션은 프리랜서 생활과 창업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경험해 본 결과 돈을 벌 수 있는 금액의 한계와 내가 수동적인 객체가 되는 단점이 있었다. 프리랜서를 하든 사업을 하던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래도 더 주체적으로 실험도 해보고 나만의 색을 낼 수 있는 사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리를 해보자면 내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1.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2.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3.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보기 위해.
4. 벌 수 있는 수입의 천장이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고 무엇도 보장된 것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더더욱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적응을 잘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렇게 변화가 빠른 세상에 하루라도 빨리 내던져지고 실패해야 한다면 빨리, 많이 하면서 노하우를 쌓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창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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